커피가 신 이유 — 원두 탓이 아니라 분쇄도입니다
핸드드립이 유독 시큼하다면 원두보다 분쇄도부터 의심해보세요. 너무 굵게 갈면 단맛이 녹아 나오기 전에 추출이 끝나고, 먼저 나온 신맛만 잔에 남아요. 덜 녹아서 나는 신맛이라 원두를 바꿔도 잘 안 고쳐집니다.
보통은 "산미 있는 원두를 잘못 샀네" 하고 다음엔 다른 봉투를 집죠. 그런데 카페에서 새콤달콤하게 마시고 같은 원두를 사 왔는데 집에서만 시다면, 원두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커요.
신맛이 제일 먼저 나와요
커피 성분은 한꺼번에 녹지 않고, 잘 녹는 순서대로 나옵니다. 산이 가장 먼저, 가장 빨리 나오고, 단맛이 그다음, 쓴맛과 떫은맛은 맨 마지막이에요.
그래서 추출이 일찍 끝나면 산만 잔뜩 나오고 단맛은 못 따라와요. 이게 과소추출이고, 마셔보면 시큼하다, 날카롭다, 아니면 밍밍한데 시다는 느낌이 들어요.
반대로 너무 오래 뽑으면 쓴맛까지 다 끌려 나오죠. 그쪽 얘기는 커피가 쓴 이유에 따로 있어요.
좋은 산미랑 덜 녹은 신맛은 달라요
신맛이라고 다 실패는 아니에요. 좋은 산미는 과일처럼 밝고, 뒤에 단맛이 따라오고, 식으면 오히려 더 달게 느껴져요. 덜 녹은 신맛은 식초처럼 혀를 쏘고, 금방 사라지면서 밍밍하고, 식을수록 더 시어집니다.
마시다 반쯤 남은 잔이 식었을 때 한 모금 더 먹어보면 꽤 잘 구분돼요. 뒤쪽에 가깝다면 원두 바꾸기 전에 추출부터 손보세요.
범인은 대개 분쇄도
같은 시간 동안 물을 부어도 원두를 굵게 갈면 표면적이 좁아서 덜 녹아요. 물도 빨리 빠지니 원두와 닿아 있는 시간 자체가 짧아지고요. 이 두 가지가 겹치면서 단맛이 녹기 전에 끝나버립니다.
기구마다 분쇄도와 시간이 짝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그래서예요. 굵게 가는 4:6 메소드는 3분 30초, 프렌치프레스는 5분 30초로 길게 잡고, 가늘게 가는 에어로프레스는 1분 40초로 짧아요.
핸드드립을 중간 분쇄 레시피(2분 30초)대로 내리면서 원두만 굵게 갈았다면? 시간은 그대로인데 덜 녹는 조건만 하나 추가된 셈이에요.
고치는 순서
한 번에 하나씩만 바꾸세요. 두 개를 같이 바꾸면 뭐가 먹혔는지 알 수가 없어요.
- 분쇄도를 한 칸 가늘게. 그라인더 눈금 한 칸이 효과가 제일 커요
- 그래도 시다면 물 온도를 2℃ 올리기. 뜨거울수록 더 잘 녹아요(물 온도 가이드)
- 마지막으로 추출 시간 확인. 물이 1분 30초 만에 다 빠진다면 너무 굵다는 신호예요
한 칸 가늘게 했더니 이번엔 쓰고 떫다면 너무 간 거예요. 반 칸 되돌리면 됩니다.
BrewCue는 레시피마다 분쇄도와 단계별 시간이 같이 적혀 있어서, 어느 변수를 바꿨는지 기록하면서 맞춰가기 편해요.
다음 봉투를 사기 전에, 그라인더 눈금부터 한 칸 돌려보세요.